국제다큐멘터리사진대상 학생부문 수상자 신슬기, 한재호
“한국 다큐멘터리, 우리가 하기 나름이예요!”
<신슬기, 한재호>
올해 처음 열린 국제다큐멘터리사진대상의 심사결과가 발표됐다. 일반부문과 학생부문으로 나눠 각각 포트폴리오를 접수받은 이번 공모전에는 일반부문에 261명, 학생부문에 103명이 지원했다. 학생부문에는 한국학생 88명과 외국학생 15명이 응모한 가운데 심사위원이자 퓰리처상 수상자인 존 카플란은 “학생작품이 일반부문보다 더 뛰어난 것도 있고 다양해 수상작을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일반과 학생부문을 통틀어 한국 수상자로는 유일하게 학생부문에서 신슬기와 한재호가 각각 3등과 4등을 차지했다. 3등을 차지한 신슬기는 ‘삶은 움직이다’는 제목으로 사라져 가는 서커스단의 이야기를 담았다. 심사위원들은 작가 자신이 서커스단의 삶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즐겼기에 이런 사진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4등을 차지한 한재호의 ‘삶이 곧 역사가 되는 그녀들 이야기’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로,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힘든 주제를 사진으로 표현해 아름다운 마음의 소유자만이 새로운 형태를 발견하고 새로운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준 작품이라는 후한 평가를 받았다. 두 명의 수상자와 함께 사진에 얽힌 솔직한 얘기를 나눴다.
103명 국내외 학생 응모서 3, 4등 차지
사진 : 먼저 수상하신 것 축하드립니다. 일단 각자 소개 부탁드릴께요.
슬기 : 경일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고 보도사진을 전공하고 있으며 나이는 23살입니다. 교내 다큐멘터리 사진동아리인 고함에서 활동하고 있기도 합니다.
재호 : 저는 전라도 광주에서 태어나 자라왔고 신구대학 사진과를 졸업한 뒤 직장생활을 하다 지금은 성공회대학교 사회학과에 편입해 4학년입니다. 27살이고, 현재 한학기를 남기고 휴학 중이고 일과 제 사진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사진 : 좀 낯간지럽겠지만 수상소감이 궁금한데요.
슬기 : 같이 응모한 선배 중에 8위를 한 사진이 있는데 그 사진이 더 좋아서 그 분이 될 거라고 생각했지 정말 제가 될지는 몰랐어요. 처음 하는 다큐 작업인데 인정받게 돼 큰 영광으로 생각하고 계속 사진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 생긴 것 같아요.
재호 : 상을 받고 나서는 자신감이 많이 생겼어요. 많이 부족하지만 다큐작업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 내가 포함됐구나, 사람들이 내 사진을 인정하게 됐구나 등등.(웃음)
사진 : 각각 200만원과 100만원의 상금을 받게 될텐데 어디에 쓰실 거예요?
슬기 : 수상 소식을 듣고 아직 서커스단을 찾아가지 못했는데 일단 이분들에게 맛있는 거 사가지고 찾아가야죠. 그리고 작업에 욕심이 많아 장비도 장만하려구요. 교수님은 학교에 떡이라도 돌려야 되는 게 아니냐고 하시는데 거기까진 너무 오버인 듯.(웃음)
재호 : 할머니들이 계시는 나눔의 집에서 촬영하면서 만난 연구원이자 사진가인 야지마 츠카사라는 일본 분이 계신데요. 서로 자극을 받으면서 작업에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이 분도 얼마 전에 일본의 여성인권과 관련된 사진상을 받았는데 상금을 전부 나눔의 집에 기부했다고 들었어요. 저도 이래야 되는 거 아닌가 눈치도 보이지만 우선 할머니들과 함께 맛있는 거 사먹으려구요.
사진 : 사진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실 것 같은데 어떻게 사진을 시작하게 됐나요?
슬기 : 고등학교 때 CA(특별활동)시간에 친구와 사진반에 들어가게 되면서 처음 사진이란걸 알게 됐어요. 그때 수동카메라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사진 이론도 전혀 모르는 상태였어요. 자연스레 자동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뽑아 보는 것으로 시작해 재미와 관심을 가지게 돼 사진과에 진학하게 됐어요.
재호 : 고등학교 1학년 때 우연히 열화당에서 나온 작은 사진집들을 보고 나름대로 사진이 이런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무척 신기해 했어요. 그때부터 사진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으로 당시 광주에 하나밖에 없던 사진학원에 찾아가 사진을 배우게 됐어요.
사진 : 재호씨는 사진과를 졸업한 뒤 다시 편입해 사회학을 공부 중인데, 어떻게 그럴 생각을 했나요?
재호 : 고등학교 때까지는 사진을 열심히 했었는데 대학에 들어가면서 안하게 되더라구요. 제가 대학에 들어갈 때는 실기가 없어지기 시작한 때라 1학년 때에 필름 감는 방법과 암실 수업 등 실기위주로 수업이 진행되다 보니 흥미를 못 느낀 것 같아요. 졸업 후에는 조그만 신문사에서 컬렉션 사진촬영 일을 했었는데 일을 할수록 사진 외에 사회 전반적인 지식이 너무 부족하다는 걸 느꼈고 공부를 해보자는 생각에 편입을 하게 됐어요. 그맘때 한홍구라는 분이 쓴 대한민국사라는 책을 감명 깊게 읽은 적이 있는데 그 분이 이 학교 교수로 계서서 성공회대로 결정하게 됐고요.
신슬기 ‘삶은 움직이다’
<사진설명> 공연은 시작되었다. 새까만 적막 속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서커스단원이 등장한다. 하나의 줄에 의지한 채 아슬아슬한 곡예를 펼치는 이들은 가벼운 듯 다부지다. 2003.05 서울
<사진설명> 세상에 날개를 편다. 지금의 내 삶 처럼. 2005.07 경기도 광주
잊혀가는 서커스단과 잊어선 안되는 위안부 할머니
사진 : 각자 수상한 작업의 소재는 어떻게 정하게 된 건가요
슬기 : 몇년전에 우연히 엄마가 어릴 때 가족들과 함께 서커스를 보러 갔던 얘기를 해주셨어요. 신기하게도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높은 천정과 화려한 불빛의 기억들이 되살아나는 거예요. 궁금해서 인터넷을 뒤져 동춘서커스단 홈페이지를 찾게 됐고 일단 무작정 찾아가 공연을 보면서 사진을 찍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재호 : 저는 2004년에 우연히 친구를 따라 경기도 광주에 위안부 할머니들이 모여 사는 나눔의 집을 찾아 가게 됐어요. 그곳에서 봉사활동하는 친구였는데 거기서 할머니들을 만나게 됐고 그 이후부터 주말마다 찾아가 자원봉사를 했어요. 얼마 안돼 할머니들과 친해지긴 했지만 사진을 찍을 엄두까지는 안 났어요. 특별한 행사가 있으면 틈틈이 사진을 찍어드리는 정도였다가 올해 초부터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사진 : 서커스단이나 위안부 할머니들이나 모두 작업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슬기 : 처음엔 공연 구경만 하다가 나중엔 무대 뒤도 들어가 보고 기웃거렸지만 도저히 카메라를 꺼낼 수 없어 그냥 돌아오길 반복했어요. 대부분 공연하는 분들이 중국인들이어서 의사소통이 안돼 친해지기 더 힘들기도 했고요. 하지만 제 또래 여자들과 조금씩 가까워지면서 촬영을 할 수 있었어요. 이때가 2003년이었고 본격적으로 촬영을 시작한 건 올해 3월부터입니다.
재호 : 하고 싶은 얘기를 사진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게 사진의 매력이라고 생각하는데요. 할머니들을 만나면서 사람을 대하는 자신감을 얻었던 것 같아요. 위안부 할머니들을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기록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대부분 한번씩 찾아와 촬영하고 돌아가요. 하지만 저는 할머니들과 2년 정도 같이 지내며 “내가 사람한테 다가갈 수 있고 마음을 열게 할 수 있겠구나”라는 자신감을 할머니들을 통해 가지면서 촬영할 수 있게 됐어요.
한재호 ‘삶이 곧 역사가 되는 그녀들 이야기’
<사진설명> 나눔의 집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의 쉼터이다. 2005년 10월 현재 아홉 분의 할머니가 어울려 살아가고 있다.
<사진설명> 지돌이(83) 할머니는 가끔 약간의 치매증상을 보이시곤 하는데, 이날은 꼭 자신을 데리러 오기로 했다는 어떤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으셨다.
사진 :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작업하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진이 있을 거 같은데요.
슬기 : 생일파티 하는 사진이요. 제가 처음 초대 받은 자리기도 했고 10명도 채 앉지 못하는 조그만 콘테이너 박스 안에서 단원들과 함께 생일파티를 했던 기억이 오래 남아요. 가족과 떨어져 먼 땅에 와서 생활하면서도 저를 챙겨주려는 모습이 감동적이었고 처음으로 그들이 저를 인정해준 자리여서 고마웠어요.
재호 : 할머니가 산소호흡기를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처음 갔을 때부터 가장 친하게 지냈던 할머니인데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달려갔더니 의식이 없었어요. 할머니가 아프다는 게 충격이었고 깨어나셨어도 저를 알아보지 못해 많이 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사진 : 재호씨 사진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은 보통 할머니들과 다른 바 없는 모습으로 보여 지는데 의도했던 것인가요?
재호 : 네, 사진을 보는 사람들에게 여기 이렇게 할머니들도 우리와 함께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줘 그들을 역사로만 기억하지 않기를 바랬어요.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다가와 달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거죠. 수요집회 사진이 약간 튄다는 분들도 있지만, 이것 역시 할머니들 생활의 일부이자 이해를 돕는다는 차원에서 마지막에 넣었습니다.
사진 : 촬영하면서 우여곡절이 많았을 것 같은데 힘들었던 때는 언제였어요?
슬기 : 공연하는 사람 30명 중 대부분이 중국사람이고 한국사람은 7명 정도예요. 중국사람과는 시간이 지나면서 친해졌지만 오히려 한국사람은 저를 피해 사실 조금 속상했어요. 이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 서커스를 하게 됐는지, 혹시 아픈 상처가 될까봐 물어보기 어려워 망설였는데 이런 게 안타까웠어요.
재호 : 할머니가 의식을 잃은 그 상황에서 카메라에 손이 가고 찍고 나서도 제 행동에 놀란적이 있어요. 아픈 할머니를 돌봐야 한다는 것과 동시에 본능적으로 제3자가 되어 카메라를 들게 되는 거죠. 이럴 때면 저 자신에 대한 정체성 “나는 사진가인가 활동가인가 어느 게 내 모습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지금도 계속되는 것 같습니다. 저 자신은 사진가로 남고 싶지만 그 분들에게는 활동가이자 사진가로 남고 싶어요.
사진 : 반복되는 똑같은 상황을 오래 작업하다보면 같은 사진만 찍게 되는 한계에 부딪히는데요, 슬기씨는 이럴 때 어떻게 하셨어요?
슬기 : 올해 3월부터 매주 주말을 끼워 3일씩 그분들과 함께 생활했어요. 자연히 그들의 일상들이 제 사진에도 반복됐어요. 그래서 교수님과 상의해 카메라를 놓고 하루 종일 앉아서 카메라 프레임이 아닌 제 눈으로만 지켜보기로 했어요. 그들 자체도 제가 카메라를 들었을 때와 아닐 때의 행동하는 모습이 틀렸고 저도 파인더에선 보지 못했던 순간들을 눈을 통해 보면서 더 많은 것들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것들이 다시 제 사진에 반영이 됐고요.
사진 : 재호씨는 할머니들의 일상 중 어떤 장면을 사진에 담으려 했나요?
재호 : 할머니들의 생활 또한 거의 똑같이 반복돼요. 그중 가장 일상적인 모습일 때 찍으려고 했어요. 중국에서 오신 지돌이 할머니라는 분이 계신데 약간 치매가 있으세요. 제가 할머니가 계신 방에 들어가 앉아 있어도 계속 혼잣말을 하곤 했는데 이것도 그 할머니의 모습이거든요. 또 예쁜 것들을 좋아하셔서 쇼핑을 즐기는 할머니 등 각자 다른 할머니들의 모습 중 제가 가장 많이 봤던 그분들의 모습을 담고 싶었어요.
수상 후 고민 늘었지만 아직 어려 최선 다할 뿐
사진 : 상대방의 사진을 보았을텐데요, 어땠나요?
슬기 : 할머니의 뒷모습 사진이 인상 깊었어요. 그래서 감추기 위한 사진이었나 싶었는데 포트폴리오를 전부 보고나서는 아닌 줄 알았어요. 일상적인 사진이 많았고 마지막 수요집회 사진이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것 역시 그분들의 생활의 일부이자 빠지면 안되는 내용인 것 같았어요.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의미에 관해 생각하게 됐어요.
재호 : 슬기씨 사진을 보고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이미지 자체로 세련된 느낌이 있다고 할까요? 빛이 참 좋고 아름답기도 한 사진에 놀랐어요.
사진 : 이제 졸업을 1년 앞두고 있는데 앞으로의 계획이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슬기 : 아직까지 이 작업에 관심이 많아 다른 작업은 생각 않고 계속해 나갈 계획입니다. 이번 수상으로 힘이 된 건 분명하지만 고민이 더 많아졌어요. 다큐멘터리 사진을 계속 할 것인가? 우리나라에서 다큐를 하면서 평생 살아갈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다가 언론사 시험을 봐야 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상을 받고나서는, 설마 다큐라는 작업을 하면서 나 하나 못살겠냐는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욕심이야 개인작업만 계속하고 싶지만 이 말을 하고 있는 지금도 고민되는 부분이예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는 만큼 다음 세대의 사진이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다른 나라에 비해 지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지원도 늘리고 사진계 발전도 도모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주제 넘는 생각까지 해 보았답니다.(웃음)
재호 : 이 작업을 계기로 한일관계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됐어요. 그래서 재일한국인이나 해방 후에도 고국으로 못 돌아오고 현지화 되신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개인적으로야 사진을 계속 할 것은 분명하지만 사진으로 평생 먹고 살 수 있을까? 상을 받게 된 이후 오히려 더 고민이 되요. 지금은 홍보용 사진을 찍으면서 생활비를 벌고 작업은 다행히 여성부와 정신대 연구소 등의 지원으로 하고 있지만 다큐멘터리만 하고 사는 게 제 욕심입니다. 주변에 선배들도 많이 노력하고 있으니까 저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발문
형식과 논리는 던져버려라. 여기선 다만 수없는 실패를 통해 저절로 체득한 이 직감적 몸동작 하나만이 진실이다. “어제의 노력이 헛되지 않음을, 인생이란 한 순간 멋지게 피어날 수 있음을, 관객들은 이 분명한 진실 앞에서 웃고 울고 환호하는 것이다.”
70년 동안 변함없이 무대를 지킨 서커스단의 삶에 대한 애착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새로운 삶의 약동을 느끼게 한다. 신슬기
발문
여기 그들의 삶이 곧 역사가 되는 사람이 있다.
짧은 2년여의 시간 동안 대부분을 나는 카메라를 내려놓고 그녀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노력했고 그녀들이 여전히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나는 카메라를 들고 함께 하고 있다. 부디 나의 사진을 통해서 사람들이 그녀들을 다시금 떠올려내어 쏟아내는 관심과 사랑으로 얼마 남지 않았을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삶에 작은 웃음이라도 띄워드리며 역사 속에 담겨 가시길 진심으로 바란다. 한재호
글 김소윤 기자
출처 : 월간사진 http://www.monthlyphoto.com/
“한국 다큐멘터리, 우리가 하기 나름이예요!”
<신슬기, 한재호>
올해 처음 열린 국제다큐멘터리사진대상의 심사결과가 발표됐다. 일반부문과 학생부문으로 나눠 각각 포트폴리오를 접수받은 이번 공모전에는 일반부문에 261명, 학생부문에 103명이 지원했다. 학생부문에는 한국학생 88명과 외국학생 15명이 응모한 가운데 심사위원이자 퓰리처상 수상자인 존 카플란은 “학생작품이 일반부문보다 더 뛰어난 것도 있고 다양해 수상작을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일반과 학생부문을 통틀어 한국 수상자로는 유일하게 학생부문에서 신슬기와 한재호가 각각 3등과 4등을 차지했다. 3등을 차지한 신슬기는 ‘삶은 움직이다’는 제목으로 사라져 가는 서커스단의 이야기를 담았다. 심사위원들은 작가 자신이 서커스단의 삶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즐겼기에 이런 사진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4등을 차지한 한재호의 ‘삶이 곧 역사가 되는 그녀들 이야기’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로,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힘든 주제를 사진으로 표현해 아름다운 마음의 소유자만이 새로운 형태를 발견하고 새로운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준 작품이라는 후한 평가를 받았다. 두 명의 수상자와 함께 사진에 얽힌 솔직한 얘기를 나눴다.
103명 국내외 학생 응모서 3, 4등 차지
사진 : 먼저 수상하신 것 축하드립니다. 일단 각자 소개 부탁드릴께요.
슬기 : 경일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고 보도사진을 전공하고 있으며 나이는 23살입니다. 교내 다큐멘터리 사진동아리인 고함에서 활동하고 있기도 합니다.
재호 : 저는 전라도 광주에서 태어나 자라왔고 신구대학 사진과를 졸업한 뒤 직장생활을 하다 지금은 성공회대학교 사회학과에 편입해 4학년입니다. 27살이고, 현재 한학기를 남기고 휴학 중이고 일과 제 사진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사진 : 좀 낯간지럽겠지만 수상소감이 궁금한데요.
슬기 : 같이 응모한 선배 중에 8위를 한 사진이 있는데 그 사진이 더 좋아서 그 분이 될 거라고 생각했지 정말 제가 될지는 몰랐어요. 처음 하는 다큐 작업인데 인정받게 돼 큰 영광으로 생각하고 계속 사진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 생긴 것 같아요.
재호 : 상을 받고 나서는 자신감이 많이 생겼어요. 많이 부족하지만 다큐작업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 내가 포함됐구나, 사람들이 내 사진을 인정하게 됐구나 등등.(웃음)
사진 : 각각 200만원과 100만원의 상금을 받게 될텐데 어디에 쓰실 거예요?
슬기 : 수상 소식을 듣고 아직 서커스단을 찾아가지 못했는데 일단 이분들에게 맛있는 거 사가지고 찾아가야죠. 그리고 작업에 욕심이 많아 장비도 장만하려구요. 교수님은 학교에 떡이라도 돌려야 되는 게 아니냐고 하시는데 거기까진 너무 오버인 듯.(웃음)
재호 : 할머니들이 계시는 나눔의 집에서 촬영하면서 만난 연구원이자 사진가인 야지마 츠카사라는 일본 분이 계신데요. 서로 자극을 받으면서 작업에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이 분도 얼마 전에 일본의 여성인권과 관련된 사진상을 받았는데 상금을 전부 나눔의 집에 기부했다고 들었어요. 저도 이래야 되는 거 아닌가 눈치도 보이지만 우선 할머니들과 함께 맛있는 거 사먹으려구요.
사진 : 사진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실 것 같은데 어떻게 사진을 시작하게 됐나요?
슬기 : 고등학교 때 CA(특별활동)시간에 친구와 사진반에 들어가게 되면서 처음 사진이란걸 알게 됐어요. 그때 수동카메라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사진 이론도 전혀 모르는 상태였어요. 자연스레 자동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뽑아 보는 것으로 시작해 재미와 관심을 가지게 돼 사진과에 진학하게 됐어요.
재호 : 고등학교 1학년 때 우연히 열화당에서 나온 작은 사진집들을 보고 나름대로 사진이 이런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무척 신기해 했어요. 그때부터 사진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으로 당시 광주에 하나밖에 없던 사진학원에 찾아가 사진을 배우게 됐어요.
사진 : 재호씨는 사진과를 졸업한 뒤 다시 편입해 사회학을 공부 중인데, 어떻게 그럴 생각을 했나요?
재호 : 고등학교 때까지는 사진을 열심히 했었는데 대학에 들어가면서 안하게 되더라구요. 제가 대학에 들어갈 때는 실기가 없어지기 시작한 때라 1학년 때에 필름 감는 방법과 암실 수업 등 실기위주로 수업이 진행되다 보니 흥미를 못 느낀 것 같아요. 졸업 후에는 조그만 신문사에서 컬렉션 사진촬영 일을 했었는데 일을 할수록 사진 외에 사회 전반적인 지식이 너무 부족하다는 걸 느꼈고 공부를 해보자는 생각에 편입을 하게 됐어요. 그맘때 한홍구라는 분이 쓴 대한민국사라는 책을 감명 깊게 읽은 적이 있는데 그 분이 이 학교 교수로 계서서 성공회대로 결정하게 됐고요.
신슬기 ‘삶은 움직이다’
<사진설명> 공연은 시작되었다. 새까만 적막 속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서커스단원이 등장한다. 하나의 줄에 의지한 채 아슬아슬한 곡예를 펼치는 이들은 가벼운 듯 다부지다. 2003.05 서울
<사진설명> 세상에 날개를 편다. 지금의 내 삶 처럼. 2005.07 경기도 광주
잊혀가는 서커스단과 잊어선 안되는 위안부 할머니
사진 : 각자 수상한 작업의 소재는 어떻게 정하게 된 건가요
슬기 : 몇년전에 우연히 엄마가 어릴 때 가족들과 함께 서커스를 보러 갔던 얘기를 해주셨어요. 신기하게도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높은 천정과 화려한 불빛의 기억들이 되살아나는 거예요. 궁금해서 인터넷을 뒤져 동춘서커스단 홈페이지를 찾게 됐고 일단 무작정 찾아가 공연을 보면서 사진을 찍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재호 : 저는 2004년에 우연히 친구를 따라 경기도 광주에 위안부 할머니들이 모여 사는 나눔의 집을 찾아 가게 됐어요. 그곳에서 봉사활동하는 친구였는데 거기서 할머니들을 만나게 됐고 그 이후부터 주말마다 찾아가 자원봉사를 했어요. 얼마 안돼 할머니들과 친해지긴 했지만 사진을 찍을 엄두까지는 안 났어요. 특별한 행사가 있으면 틈틈이 사진을 찍어드리는 정도였다가 올해 초부터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사진 : 서커스단이나 위안부 할머니들이나 모두 작업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슬기 : 처음엔 공연 구경만 하다가 나중엔 무대 뒤도 들어가 보고 기웃거렸지만 도저히 카메라를 꺼낼 수 없어 그냥 돌아오길 반복했어요. 대부분 공연하는 분들이 중국인들이어서 의사소통이 안돼 친해지기 더 힘들기도 했고요. 하지만 제 또래 여자들과 조금씩 가까워지면서 촬영을 할 수 있었어요. 이때가 2003년이었고 본격적으로 촬영을 시작한 건 올해 3월부터입니다.
재호 : 하고 싶은 얘기를 사진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게 사진의 매력이라고 생각하는데요. 할머니들을 만나면서 사람을 대하는 자신감을 얻었던 것 같아요. 위안부 할머니들을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기록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대부분 한번씩 찾아와 촬영하고 돌아가요. 하지만 저는 할머니들과 2년 정도 같이 지내며 “내가 사람한테 다가갈 수 있고 마음을 열게 할 수 있겠구나”라는 자신감을 할머니들을 통해 가지면서 촬영할 수 있게 됐어요.
한재호 ‘삶이 곧 역사가 되는 그녀들 이야기’
<사진설명> 나눔의 집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의 쉼터이다. 2005년 10월 현재 아홉 분의 할머니가 어울려 살아가고 있다.
<사진설명> 지돌이(83) 할머니는 가끔 약간의 치매증상을 보이시곤 하는데, 이날은 꼭 자신을 데리러 오기로 했다는 어떤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으셨다.
사진 :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작업하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진이 있을 거 같은데요.
슬기 : 생일파티 하는 사진이요. 제가 처음 초대 받은 자리기도 했고 10명도 채 앉지 못하는 조그만 콘테이너 박스 안에서 단원들과 함께 생일파티를 했던 기억이 오래 남아요. 가족과 떨어져 먼 땅에 와서 생활하면서도 저를 챙겨주려는 모습이 감동적이었고 처음으로 그들이 저를 인정해준 자리여서 고마웠어요.
재호 : 할머니가 산소호흡기를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처음 갔을 때부터 가장 친하게 지냈던 할머니인데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달려갔더니 의식이 없었어요. 할머니가 아프다는 게 충격이었고 깨어나셨어도 저를 알아보지 못해 많이 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사진 : 재호씨 사진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은 보통 할머니들과 다른 바 없는 모습으로 보여 지는데 의도했던 것인가요?
재호 : 네, 사진을 보는 사람들에게 여기 이렇게 할머니들도 우리와 함께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줘 그들을 역사로만 기억하지 않기를 바랬어요.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다가와 달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거죠. 수요집회 사진이 약간 튄다는 분들도 있지만, 이것 역시 할머니들 생활의 일부이자 이해를 돕는다는 차원에서 마지막에 넣었습니다.
사진 : 촬영하면서 우여곡절이 많았을 것 같은데 힘들었던 때는 언제였어요?
슬기 : 공연하는 사람 30명 중 대부분이 중국사람이고 한국사람은 7명 정도예요. 중국사람과는 시간이 지나면서 친해졌지만 오히려 한국사람은 저를 피해 사실 조금 속상했어요. 이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 서커스를 하게 됐는지, 혹시 아픈 상처가 될까봐 물어보기 어려워 망설였는데 이런 게 안타까웠어요.
재호 : 할머니가 의식을 잃은 그 상황에서 카메라에 손이 가고 찍고 나서도 제 행동에 놀란적이 있어요. 아픈 할머니를 돌봐야 한다는 것과 동시에 본능적으로 제3자가 되어 카메라를 들게 되는 거죠. 이럴 때면 저 자신에 대한 정체성 “나는 사진가인가 활동가인가 어느 게 내 모습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지금도 계속되는 것 같습니다. 저 자신은 사진가로 남고 싶지만 그 분들에게는 활동가이자 사진가로 남고 싶어요.
사진 : 반복되는 똑같은 상황을 오래 작업하다보면 같은 사진만 찍게 되는 한계에 부딪히는데요, 슬기씨는 이럴 때 어떻게 하셨어요?
슬기 : 올해 3월부터 매주 주말을 끼워 3일씩 그분들과 함께 생활했어요. 자연히 그들의 일상들이 제 사진에도 반복됐어요. 그래서 교수님과 상의해 카메라를 놓고 하루 종일 앉아서 카메라 프레임이 아닌 제 눈으로만 지켜보기로 했어요. 그들 자체도 제가 카메라를 들었을 때와 아닐 때의 행동하는 모습이 틀렸고 저도 파인더에선 보지 못했던 순간들을 눈을 통해 보면서 더 많은 것들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것들이 다시 제 사진에 반영이 됐고요.
사진 : 재호씨는 할머니들의 일상 중 어떤 장면을 사진에 담으려 했나요?
재호 : 할머니들의 생활 또한 거의 똑같이 반복돼요. 그중 가장 일상적인 모습일 때 찍으려고 했어요. 중국에서 오신 지돌이 할머니라는 분이 계신데 약간 치매가 있으세요. 제가 할머니가 계신 방에 들어가 앉아 있어도 계속 혼잣말을 하곤 했는데 이것도 그 할머니의 모습이거든요. 또 예쁜 것들을 좋아하셔서 쇼핑을 즐기는 할머니 등 각자 다른 할머니들의 모습 중 제가 가장 많이 봤던 그분들의 모습을 담고 싶었어요.
수상 후 고민 늘었지만 아직 어려 최선 다할 뿐
사진 : 상대방의 사진을 보았을텐데요, 어땠나요?
슬기 : 할머니의 뒷모습 사진이 인상 깊었어요. 그래서 감추기 위한 사진이었나 싶었는데 포트폴리오를 전부 보고나서는 아닌 줄 알았어요. 일상적인 사진이 많았고 마지막 수요집회 사진이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것 역시 그분들의 생활의 일부이자 빠지면 안되는 내용인 것 같았어요.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의미에 관해 생각하게 됐어요.
재호 : 슬기씨 사진을 보고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이미지 자체로 세련된 느낌이 있다고 할까요? 빛이 참 좋고 아름답기도 한 사진에 놀랐어요.
사진 : 이제 졸업을 1년 앞두고 있는데 앞으로의 계획이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슬기 : 아직까지 이 작업에 관심이 많아 다른 작업은 생각 않고 계속해 나갈 계획입니다. 이번 수상으로 힘이 된 건 분명하지만 고민이 더 많아졌어요. 다큐멘터리 사진을 계속 할 것인가? 우리나라에서 다큐를 하면서 평생 살아갈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다가 언론사 시험을 봐야 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상을 받고나서는, 설마 다큐라는 작업을 하면서 나 하나 못살겠냐는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욕심이야 개인작업만 계속하고 싶지만 이 말을 하고 있는 지금도 고민되는 부분이예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는 만큼 다음 세대의 사진이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다른 나라에 비해 지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지원도 늘리고 사진계 발전도 도모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주제 넘는 생각까지 해 보았답니다.(웃음)
재호 : 이 작업을 계기로 한일관계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됐어요. 그래서 재일한국인이나 해방 후에도 고국으로 못 돌아오고 현지화 되신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개인적으로야 사진을 계속 할 것은 분명하지만 사진으로 평생 먹고 살 수 있을까? 상을 받게 된 이후 오히려 더 고민이 되요. 지금은 홍보용 사진을 찍으면서 생활비를 벌고 작업은 다행히 여성부와 정신대 연구소 등의 지원으로 하고 있지만 다큐멘터리만 하고 사는 게 제 욕심입니다. 주변에 선배들도 많이 노력하고 있으니까 저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발문
형식과 논리는 던져버려라. 여기선 다만 수없는 실패를 통해 저절로 체득한 이 직감적 몸동작 하나만이 진실이다. “어제의 노력이 헛되지 않음을, 인생이란 한 순간 멋지게 피어날 수 있음을, 관객들은 이 분명한 진실 앞에서 웃고 울고 환호하는 것이다.”
70년 동안 변함없이 무대를 지킨 서커스단의 삶에 대한 애착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새로운 삶의 약동을 느끼게 한다. 신슬기
발문
여기 그들의 삶이 곧 역사가 되는 사람이 있다.
짧은 2년여의 시간 동안 대부분을 나는 카메라를 내려놓고 그녀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노력했고 그녀들이 여전히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나는 카메라를 들고 함께 하고 있다. 부디 나의 사진을 통해서 사람들이 그녀들을 다시금 떠올려내어 쏟아내는 관심과 사랑으로 얼마 남지 않았을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삶에 작은 웃음이라도 띄워드리며 역사 속에 담겨 가시길 진심으로 바란다. 한재호
글 김소윤 기자
출처 : 월간사진 http://www.monthlyphoto.com/